
부모님에게서 좋은 유전자를 받았다고 믿었다.
몸은 늘 무심했고, 나는 그 무심함을 건강이라고 불렀다.
백신을 맞거나, 정기검진을 받을 때를 빼면 병원 문턱을 밟을 일이 없었다.
그 흔한 알러지조차 없었다.
6개월 전쯤부터 몸이 조용히 말을 바꾸기 시작했다.
소고기를 먹으면 이상하게 속이 거북했다.
많이 먹지 않으면 “그냥 컨디션 탓”으로 넘길 수 있는 정도였다.
약을 먹을 필요는 없었다.
큰일이 아니라고 눙치고 싶었다.
지난주 어느 늦은 밤, 돼지국밥을 먹고 잠이 들었다.
처음엔 가려움이 ‘느낌’으로 왔다.
가벼운 신호 같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느낌은 조금씩 단단해지며 밤을 잠식했다.
잠을 이루지 못했고, 새벽이 되도록 여기저기 긁었다.
아침은 피곤이 아니라 상처 같은 감각으로 찾아왔다.
두드러기가 얼굴을 제외한 온몸을 덮었다.
병원으로 가는 길엔 숨이 가빠지는 게 느껴졌다.
몸이 불편하다는 말을, 몸이 직접 증명하고 있었다.
처방받은 약을 먹자, 증상은 빠르게 가라앉았다.
나는 그게 한 번의 사고이길 바랐다.
‘일시적인 현상’이라는 말 하나면, 다시 평소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나흘이 지나 화천으로 가는 길, 약을 챙겼다.
조심은 이제 습관이 되었고, 기대는 점점 줄어드는 중이었다.
저녁 메뉴에 제육볶음이 있었다.
그 한 접시는 ‘식사’가 아니라 시험지처럼 보였다.
나는 아주 조심스럽게 젓가락 두 번을 입에 넣었다.
조용히 씹고, 아무 일도 없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잠시 후, 몸은 빠르게 답을 냈다.
알러지 약 덕분에 크게 번지지는 않았지만, 두드러기가 올라왔다.
막을 수는 있어도, 없던 일로 만들 수는 없었다.
소고기에 이어 돼지고기까지.
이쯤 되면 몸은 나에게 분명히 말하는 것 같다.
“이제는 예전의 방식으로 살지 말라”고.
전생에 큰 죄를 짓지 않았다면 이럴 수가 없다는, 쓸데없이 과장된 농담이 떠올랐다.
하지만 농담은 오래 버티지 못했다.
남는 건 단순한 사실 하나였다.
나는 이제 돼지고기를 먹을 수 없게 되었다.
내 삶에서 가장 익숙했던 맛 하나가, 무연히 퇴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