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동 금소마을로 향하는 길, 어느덧 발길은 관성처럼 다시 그곳을 가리킨다. 지난 이 년의 시간 동안 일곱 번을 거듭해 찾아온 길이다. 발걸음의 횟수가 층층이 쌓여갈수록, 눈앞의 풍경은 더욱 투명하고 또렷하게 차오른다. 길은 이미 몸에 익었고, 마을은 더 이상 설명을 요구하지 않는다. 서로를 향한 긴 설명이 생략된 자리에는 오직 선명해진 감각만이 남습니다. 바람의 결, 흙내음, 그리고 정적의 무게까지. 그래서 이번 여정의 첫 문장은 거창한 수식 없이 그저 “다시 왔다”는 나지막한 확인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아름다운 시작이 된다.
비어 있어 더 많은 이야기를 품는 금소마을 고고창고


금소마을을 찾는 방문자를 위한 공간은 이제 예전 이름을 내려놓고, ‘고고창고’라는 새 간판을 달았다. 옛 것을 뜻하는 ‘古’와 앞으로 나아가라는 ‘go’가 겹친다. 과거를 박제하는 말이 아니라, 오래된 것이 자기 속도로 다음을 향해 걸어가겠다는 선언이다.
낡은 건물의 나직한 숨결, 낮은 천장을 비스듬히 가로지르는 빛의 각도, 그리고 한 번 쓰이고 버려지는 대신 겹겹이 쌓여온 시간들. 허물기보다는 덧대고, 밀어내기보다는 남겨두는 그 너그러운 태도가 공간 곳곳에 스며 있다. 창고의 본질처럼 비어 있는 이 공간은 역설적이게도 비어 있기에 더 많은 이야기를 품어낸다. 짧은 여행의 호흡이 이곳에서 비로소 천천히 숨을 고른다.
대마차의 인사, 대봉감이 놓인 테이블

문을 열고 들어서면, 금소마을의 방식인 대마차로 환영을 시작한다. 말보다 먼저 건네지는 것은 따뜻한 온도다. 잔을 감싸 쥔 손끝이 먼저 풀리고, 마음은 그 다음에 천천히 따라온다. 테이블 위에는 작은 선물이 곁을 지키고 있었다. 하동에서 건너온 대봉감, 여행자가 하동에 가면 빠지지 않고 들르던 하동 와이너리 꽃다연의 사장님의 선물이다, 길 위에서 건너온 안부 같은 것. 이유를 묻지 않아도 충분한, 설명보다 마음이 먼저 도착한 흔적이었다.
지역과 지역은 이렇게 이어진다. 지도 위의 선으로가 아니라, 손에서 손으로, 얼굴과 얼굴로. 따뜻한 기운은 서서히 퍼지고, 단맛은 서두르지 않는다. 씹을수록 시간이 길어지는 맛이 있다. 잠깐 머무는 방문이라도, 이 테이블 위에서는 하루가 속도를 낮춘다. 짧은 체류의 틈새로 계절 하나가 조용히 지나가고, 여행자는 그 느린 흐름을 한 모금씩 받아 적는다.
금소마을 고고창고 안에는 살짝 비켜 서 있는 장면들이 숨어 있다

고고창고 안에는 살짝 비켜 서 있는 장면들이 숨어 있다. “여기가 포인트”라며 손짓하지도 않고, 설명을 길게 붙이지도 않는데 이상하게 발걸음이 늦어진다. 시선은 벽과 벽 사이의 간격을 더듬고, 빛이 머무는 높이를 가늠한다. 오래된 공간이 가진 여백은 사람을 조용히 세운다.
그중에서도 유독 마음이 머무는 곳은 뜻밖에도 화장실로 이어지는 좁은 길목이다. 통로는 좁고, 빛은 한 방향에서만 스며든다. 안동포의 실들이 매달린 채 시간을 말리고, 그 사이를 사람의 그림자가 조용히 가로질러 간다. 특별할 것 없는 자리임에도, 그 덜어낸 풍경이 주는 울림 때문인지 잔상은 오히려 더 깊고 선명하게 남는다.
방앗간 점심, 김점희 셰프의 리듬

짧은 일정의 윤곽이 그려지고, 점심을 마중하기 위해 방앗간으로 향했다. 문을 여는 찰나, 공기는 이미 정성스러운 한 끼가 가리키는 방향을 알고 있었다. 안에서는 김점희 셰프가 여행자를 맞이한다. 낯설지 않은 얼굴, 그리고 익숙한 손의 리듬이 반갑다.
그녀는 주중에는 도시의 주방에 서고, 주말이면 다시 마을의 품으로 돌아온다. 오가는 길의 고단함이 적지 않을 텐데도 그녀의 태도는 늘 정갈하고 단정하다. 재료를 길게 설명하며 뽐내기보다 불의 온도를 먼저 올리고, 말을 보태기보다 냄비 속의 숨소리를 한 번 더 살핀다. 요란한 수식 대신 정확한 손길이 주방의 중심을 먼저 잡는다.
이윽고 식탁 위로 하얀 김이 피어오른다. 그 따스한 증기 사이로 오늘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특별한 것”을 내세워 강조하지 않음에도, 한 끼의 중심은 흐트러짐 없이 분명하다. 이 마을에서 마주하는 점심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식사라기보다, 정성을 다해 내어주는 ‘대접’에 가깝다.
여행자는 빳빳한 손님의 자세를 내려놓고, 잠시 들른 이웃처럼 편안히 자리에 몸을 의탁한다. 반나절의 여정은 여기서 한 번 깊게 숨을 고르고, 그 숨결만큼의 온기가 식탁 위에 조용히 내려앉는다.
임하막걸리 윤강호 대표, 불을 건너온 근황


식탁 곁에 또 한 사람의 그림자가 조용히 머문다. 임하막걸리의 윤강호 대표다. 지난봄, 경북의 산야를 휩쓸었던 화재가 그의 양조장마저 집어삼켰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의 먹먹함이 여태 마음 한구석에 가라앉아 있다. 술은 다시 빚어낼 수 있다 해도, 한 번 기세 좋게 타버린 시간의 온도는 그리 쉽게 식지 않는 법이다.
그는 근황을 과장 없이, 담담한 어조로 건넸다. 양조장은 다시 세우는 중이라고 했다. 말은 짧았고 표정은 깊었다. 그의 손에 들린 것은 아직 ‘완성’이라는 이름을 붙이기엔 이른 액체였다. 술이 되기 전의 상태, 즉 기다림이라는 수식어가 이름처럼 붙어 있는 원주(原酒).
잔에 액체가 차오르기 전부터 이야기는 이미 마음에 먼저 도착해 있었다. 거센 불길을 건너온 사람의 리듬, 그리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는 손의 감각. 금소마을의 점심 자리는 이토록 정갈한 음식뿐만 아니라, 화마를 이겨낸 사람의 시간까지 넉넉히 받아 안는다.
원주(源酒), 기다림의 시간을 마시다

‘원주’라는 말에, 미각은 맛의 정체보다 그 깊이를 먼저 궁금해한다. 아직 술이라는 이름표를 달기 전의 상태. 그것은 기다림의 시간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액체다. 잔에 따르자 색은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고, 향은 수줍은 듯 조심스러웠다.
다만 입술에 닿는 순간, 기억 속에 각인된 ‘완성된 술’의 잔상이 더 선명하게 떠올랐다. 시판용 막걸리가 지닌 매끄러운 균형과 적당한 온도. 그 익숙한 지점이 그리워진 탓이었을 테다.
그렇다고 해서 실망은 아니었다. 이 한 모금을 들이켜는 행위는 지금의 맛을 성급히 평가하는 일이 아니라, 다가올 시간을 미리 마셔보는 일에 가까웠다. 다음번 금소마을로 발길이 돌아올 때에는, 다시 꼿꼿하게 세워진 양조장에서 길어 올린 술을 이 자리에서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기다림은 그렇게, 또 다른 여행을 기약하게 만드는 가장 다정한 이유가 된다.
찜닭과 밑반찬, 과장 없이 제 몫을 다하는 맛




점심의 중심은 김점희 셰프의 찜닭이었다. 불이 오르고, 김이 먼저 식탁을 정리한다. 이 음식은 화려함으로 밀어붙이지 않는다. 오래 끓였다고 흐트러지지도, 서둘러 맛을 앞세우지도 않는다. 익을 만큼 익고, 멈출 때 멈추는 ‘정확한 속도’가 있다. 젓가락이 가기 전부터 이미 방향이 잡혀 있는 한 끼였다.
곁에는 두부와 배추전, 그리고 몇 가지 밑반찬이 나란히 놓였다. 과장 없이 제 몫을 하는 맛들이다. 사실 여행자는 경상도 음식의 진한 간과 빠른 맛에 가끔 마음이 한 발 물러서곤 한다. 그런데 김점희 셰프의 손을 거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짠맛이 앞서지 않고, 재료의 결이 먼저 모습을 드러낸다.
그녀의 음식은 금소마을과 닮았다. 앞서 나서지 않지만 오래 남는다. 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문득 생각나는 맛. 반나절의 여정이 끝나도, 그 점심은 기억 속에서 한동안 천천히 다시 끓었다.
반주 황금류, 누룩의 깊이가 양념의 모서리를 다듬다


찜닭이 제 속도로 익어가는 동안, 식탁은 잠시 말을 아꼈다. 김이 오르내리는 사이에 빈자리가 하나 생겼고, 그 자리에 술 한 병이 조용히 놓였다. 황금류였다. 유리병 속 색은 곡물이 오래 묵혀 둔 시간의 흔적처럼 보였다. 안동에서 만난다는 사실이 이 술의 좌표를 정해 준다. 설명은 길지 않았고, 병은 조용히 테이블 가운데 놓였다.
찜닭의 김이 오르자, 잔도 그제야 채워졌다. 황금류는 맛을 밀어붙이지 않는다. 단맛으로 먼저 다가서지 않고, 기름을 거칠게 끊어내지도 않는다. 누룩의 깊이가 양념의 모서리를 다듬어 주고, 닭살의 결을 따라 천천히 내려앉는다. 술이 요리를 이기는 게 아니라, 요리를 더 또렷하게 만드는 방식, 16도라는 도수는 그 사려 깊은 역할을 위해 필요한 만큼만 힘을 보태고 있었다.
자전거 마실 한 바퀴, 금소마을의 오후

밖으로 나서자, 하루의 속도가 한 단계 내려앉는다. 자전거에 몸을 싣고 안동 금소마을의 오후 속으로 조용히 스며든다. 마을 길은 서두르는 법이 없었고, 여행자 또한 속도를 낼 이유를 찾지 못했다. 논과 집 사이를 가로질러 바람이 먼저 길을 트고 지나가면, 페달은 그 정갈한 흐름에 발맞춰 천천히 돌아간다.
멀리 나가지 않아도 충분했다. 방향을 정하지 않아도 길은 자연스레 이어졌다. 소음이 걷힌 자리에는 풍경이 한 뼘 더 넓게 차오른다. 금소의 오후는 이렇게 마실 한 바퀴로도 온전히 채워진다.
안동포 짜기 시연, 손끝에 남는 전승의 자리
금소마을에서의 마지막 여정은 안동포 짜기 시연으로 갈무리되었다. 이 마을에서 안동포는 박제된 전시물이 아니라, 여전히 뜨겁게 박동하는 생활의 기억에 가깝다. 집집마다 쌓여 있던 삼베의 거친 듯 부드러운 촉감, 베틀 소리가 담장을 넘어 골목을 건너던 시간이 이곳에는 여전히 고여 있다. 실을 고르고 장력을 맞추며 한 올 한 올을 더듬는 노련한 손의 움직임은 그 어떤 장황한 설명보다 정확하고 단단하다. 금소마을이 왜 안동포의 산지이자 전승의 자리로 불리는지는, 그 정직한 손끝에서 조용히 증명되고 있었다.
머문 시간의 깊이에 비하면 떠남의 절차는 늘 간단하기 마련이다. 실을 뽑아내고 베를 짜 내려가는 그 경건한 손놀림을 마지막으로 눈에 담으며 금소마을을 벗어난다. 여정은 여기서 고요히 접히고, 안동포가 겹겹이 만들어온 시간의 결은 여행자의 등에 묵직한 여운으로 남는다. 마을에서 도시로, 삶의 지혜가 담긴 기술에서 익숙한 일상의 풍경으로 넘어가는 짧은 전환의 시간. 안동의 이야기는 그렇게 원도심을 향해, 또 다른 삶의 다음 장으로 이어진다.